저녁의 유령들
글쓰기는 사건과 감정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다. 언제 써? 질문을 종종 받는데, 게으르므로 이름 붙여주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만 쓴다. 좋은 영화나 그림, 책, 음악을 보거나 들었을 때 이상하고 천박하거나, 아름답고 벅찬 순간을 맞았을 때, 당신의 일부가 투명한 물 속 파란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것을 볼 때,감정적으로 잔뜩 흐트러진 스스로의 마음을 가만 가만 돌아볼 때, - 깊숙한 곳에서 가만히 불씨가 당겨진다. 오래 잠들어있던 저녁의 유령들이 불빛을 받고 기다렸다는 듯 일어선다. 얼굴이 없는 유령에게 이목구비를 주고, 육체의 세부를 주고, 옷을 입히고, 마침내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많은 품이 든다. 그러나 형체 없던 것들이 내 세계에 단단히 붙박힌 실체가 되는 순간은 비할 데 없는 희열이다. 이제 더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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