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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속 사랑과 죽음의 유혹을 떨치고 자유를 향해 엘리자벳을 보았다. 2막의 '당신처럼' 이 나오는 순간부터 감정이 북받치더니 공연이 끝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넘버는 '가족모임이 싫어' '나도 나도' 키득거렸던 아버지-당신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노래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소녀 시절 부르던 그 곡을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를 그리며 다시 부르는 엘리자벳. 새장 속의 삶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의심없이 믿던 어린 시절이 고독과 절망으로 점철된 현재와 대비되며 심금을 울린다. 엘리자벳 역 조정은의 무대는 처음 보았는데 어쩌면 그리 와닿는 연기를 하던지. 청초하고 가녀리며 사랑스럽지만 자유를 향한 갈망만은 포기할 수 없는 여자, 그러나 '황후' 라는 지위의 새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국 불가능해 안으로부터 안으로부터 부서.. 더보기
오랜 친구이자 10대 시절의 잔느; 였던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했더니 '너는 다정해질 땐 한량 없으니 조심해'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는 그다지 다정한 사람은 아니고, 타인을 싫어하거나 경멸함으로써 얻게 되는 반대 급부로 너무도 심대한 타격을 입는 나머지 갈등의 포인트를 피해다니는 사람에 가깝다. 꽤 제멋대로 구는데도 주변인으로부터 미움을 사본 일이 거의 없는 것은, 이 균형을 맞추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서리 내린 들판처럼 싸늘한 스스로의 에고/ 관찰자로서의 시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내가 텍스트와 그 안에 담긴 타자의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더 깊게, 실존하는 나와 인간적으로 얽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쓸쓸해.. 더보기
저녁의 유령들 글쓰기는 사건과 감정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다. 언제 써? 질문을 종종 받는데, 게으르므로 이름 붙여주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만 쓴다. 좋은 영화나 그림, 책, 음악을 보거나 들었을 때 이상하고 천박하거나, 아름답고 벅찬 순간을 맞았을 때, 당신의 일부가 투명한 물 속 파란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것을 볼 때,감정적으로 잔뜩 흐트러진 스스로의 마음을 가만 가만 돌아볼 때, - 깊숙한 곳에서 가만히 불씨가 당겨진다. 오래 잠들어있던 저녁의 유령들이 불빛을 받고 기다렸다는 듯 일어선다. 얼굴이 없는 유령에게 이목구비를 주고, 육체의 세부를 주고, 옷을 입히고, 마침내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많은 품이 든다. 그러나 형체 없던 것들이 내 세계에 단단히 붙박힌 실체가 되는 순간은 비할 데 없는 희열이다. 이제 더 이상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