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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다, 쓰다

새장 속 사랑과 죽음의 유혹을 떨치고 자유를 향해



엘리자벳을 보았다. 2막의 '당신처럼' 이 나오는 순간부터 감정이 북받치더니 공연이 끝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넘버는 '가족모임이 싫어' '나도 나도' 키득거렸던 아버지-당신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노래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소녀 시절 부르던 그 곡을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를 그리며 다시 부르는 엘리자벳. 새장 속의 삶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의심없이 믿던 어린 시절이 고독과 절망으로 점철된 현재와 대비되며 심금을 울린다.


엘리자벳 역 조정은의 무대는 처음 보았는데 어쩌면 그리 와닿는 연기를 하던지. 청초하고 가녀리며 사랑스럽지만 자유를 향한 갈망만은 포기할 수 없는 여자, 그러나 '황후' 라는 지위의 새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국 불가능해 안으로부터 안으로부터 부서져가는 엘리자벳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감정을 풍부하게 머금은 배우의 목소리에 동조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감상하기가 힘들어진다. 20년을 바깥으로 떠돈 아내를 향해 처음 프로포즈 한 그 장소에서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말하는 남편도 마음 아프지만 당신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필요없다 답했던 그 옛날과 다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엘리자벳의 마음에도 공감하므로 나오는 건 눈물 뿐.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아요, 내겐 자유가 필요해요.


청초한 엘리자벳에 대비하여 '죽음' 역의 전동석은 섹슈얼한 매력을 마구 발산해 둘의 케미가 좋다. (난 이런 종류의 매력을 가진 배우를 발견하면 자동적으로 도모토 코이치나 장현승을 떠올리는데 이유를 모르겠음;)


어쨌든 죽음은 끝내 자기 곁으로 불러들인 사람에게 피날레로 키스를 선사하는데, 이 '죽음의 키스'는 남녀를 가리지 않으므로 엘리자벳의 아들 루돌프의 임종 씬에서도 키스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의 핀 조명과 죽음의 천사 연출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넋놓고 봄.


넘버로만 따지면 죽음의 유혹을 향해 당당히 '너를 원하지 않아, 나는 내가 원할 때 춤을 출거고 내 춤의 대상은 내가 정해!' 선언하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가 몹시 좋고, 만악의 근원인 시월드(...)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이 감옥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만방에 알리는 '나는 나만의 것'도 아름답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순간엔 내 여자가 될거라는 죽음의 '마지막 춤'도, 죽음과 루돌프가 함께하는 '그림자는 길어지고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뮤지컬은 자유 없는 사랑의 딜레마 속에서 끝내 자기 의지를 택한 인간이 죽음의 유혹을 견디며 나아가는 과정 - 그러나 현실의 제약 속에서 무뎌지고 무너져 끝내 죽음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반짝이는 전반부의 추억이 후반부의 고통과 대비되며 감정선이 고조되고, 스토리라인이 비교적 선명한 편이라 사전 지식 없이 넘버만으로도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게 장점.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무대 연출이 몹시 좋은 뮤지컬이기도 하다. (앙상블은 좀 별로야;)


아, 뮤지컬을 보고나면 그 넘버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며칠 간을 행복해했는데 엘리자벳은 음원이 별로 풀리지 않아 아쉽다.


다시 듣고 싶어, 엘리자벳과 죽음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