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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판타지아, 여행의 추억 1한 여름의 판타지아를 보았다. 영화관을 나서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환기한 내 추억에 대해. 서두에 숫자를 붙인데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긴 글이 될 것 같다. 2오랜 지인들이라면 혹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2011년 여름, 나는 터키에 갔다. 한 강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얼굴을 하고 버스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내고 싶었던 시절이었고, 마음이 가난해 일기도 잘 쓰지 않던 시절이었으며, 여행지에서 신고 다닐 튼튼한 운동화 한 켤레를 사러나갈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빠 온 세상 모두를 진심으로 저주할 때였다. 그러나 골든혼과 마르마라 해를 보겠다는 일념에 새벽 잔업이 힘들지 않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인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그곳에.. 더보기
자전거 여행 뒤늦게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읽었다. 몇 문장을 옮겨둔다. 글 전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오롯이 아름다워 부분을 들어내면 무너질까 차마 옮기지 못한 것들도 있다. 실은 그것들이 가장 좋다, 이를테면 봄의 꽃을 묘사한 글이나 백골로 가지런히 누워 쉬는 죽음 너머의 꿈, 섬진강 덕치마을에 대한 단상 같은 것. 허나 감탄을 잊지 않기 위해 몇 문장을 구태여 옮긴다. / 사람은 새처럼 옮겨다니며 살 수가 없으므로 이 기진맥진한 강가에서 또 봄을 맞는다. 살아갈수록 풀리고 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은 점점 더 고단해지고 쓸쓸해진다. 늙은 말이 무거운 짐을 싣고 네 발로 서지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엉기는 것 같다. 겨우, 그러나 기어코 봄은 오는데, 그 봄에도 손잡이 떨어진 냄비 속에서 한 움큼의 냉이와 된장은 이 기적의 .. 더보기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1 내 것이 아니라 생각되는 일엔 초연하려 노력한다. 억지로 우겨 잠시간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있겠으나 맞춤옷이 아닌 일은 떠나기 마련이고, 그 상실은 아예 가지지 못했을 때보다 더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끔은 내 그릇을 넘어설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몹시 갖고 싶은 것이 생긴다. 그럴 땐 좀 괴롭지만, 혹시나 있을 가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다만 원칙은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어찌됐든 나는 그렇게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생길 때의 스스로를 좋아한다. 집중하고 열광할 때의 나. 열 두살 이래 나는 항상 소유할 수 없는 판타지 속의 무언가를 좋아했는데, 그 한편 내 애정의 대상이 오직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좋아함은 무아의 열광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