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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다, 쓰다

타락한 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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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타락한 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가능한 싸움이죠. 이길 수는 없어요.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워지고, 농담과 사소한 불법으로 무마해 가며 살거나, 혹은 할리우드 제작자처럼 타락하고 사교적이며 무례해질 수 있겠지요.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전문직 두세 종을 제외하면, 이 시대에 한 남자가 어느 정도 타락하지 않고, 성공이란 언제 어디서나 부정한 돈벌이이게 마련이라는 냉혹하고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에서 적절한 풍족함을 누릴 방법이 전혀 없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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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금쯤은 그녀도 알고 있겠죠. 내가 애썼다는 사실을, 그녀를 몇 번만 더 웃음 짓게 할 수 있다면, 내 하찮은 문학적 경력을 몇 년 희생하는 것쯤은 그저 치러야 할 작은 대가로 여겼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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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떤 면에서 나는 오래 전에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요. 사실 지난 이 년간 여러 번 한밤중이면, 그녀를 잃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임을 떠올리곤 했지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겪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하는 것은, 실제로 눈을 감기며 다시는 그 눈이 뜨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죽어서 기쁩니다. 이 자존심 강한, 두려움을 모르는 새가 남은 생을 웬 끔찍한 요양원의 어느 새장에 갇혀서 보내리라는 생각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 차마 그 사실을 마주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는 사실 무너지지 않았어요.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시의 여동생도 돌봐야 했으니까요. 나는 시시의 방에서 잠을 잡니다. 처음엔 견디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뒤 이런 생각이 들었죠. 방이 비어 있다면 유령이 나올 테고 그러면 문 앞을 지날 때마다 무서워하게 될 테니까, 남은 방법은 이 방에 들어와서 내 허접쓰레기들로 가득 채워, 나에게 익숙한 너저분한 방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뿐이라고. 옳은 결정이었어요.

삼십 년 하고 열 달, 이틀 동안 그녀는 내 삶의 빛이었고, 내 모든 목표였습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그녀가 따뜻하게 손을 녹일 수 있게 불을 지펴 준 것 뿐입니다. 할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서간집,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북스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