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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다, 쓰다

새장 속 사랑과 죽음의 유혹을 떨치고 자유를 향해 엘리자벳을 보았다. 2막의 '당신처럼' 이 나오는 순간부터 감정이 북받치더니 공연이 끝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넘버는 '가족모임이 싫어' '나도 나도' 키득거렸던 아버지-당신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노래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소녀 시절 부르던 그 곡을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를 그리며 다시 부르는 엘리자벳. 새장 속의 삶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의심없이 믿던 어린 시절이 고독과 절망으로 점철된 현재와 대비되며 심금을 울린다. 엘리자벳 역 조정은의 무대는 처음 보았는데 어쩌면 그리 와닿는 연기를 하던지. 청초하고 가녀리며 사랑스럽지만 자유를 향한 갈망만은 포기할 수 없는 여자, 그러나 '황후' 라는 지위의 새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국 불가능해 안으로부터 안으로부터 부서.. 더보기
자전거 여행 뒤늦게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읽었다. 몇 문장을 옮겨둔다. 글 전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오롯이 아름다워 부분을 들어내면 무너질까 차마 옮기지 못한 것들도 있다. 실은 그것들이 가장 좋다, 이를테면 봄의 꽃을 묘사한 글이나 백골로 가지런히 누워 쉬는 죽음 너머의 꿈, 섬진강 덕치마을에 대한 단상 같은 것. 허나 감탄을 잊지 않기 위해 몇 문장을 구태여 옮긴다. / 사람은 새처럼 옮겨다니며 살 수가 없으므로 이 기진맥진한 강가에서 또 봄을 맞는다. 살아갈수록 풀리고 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은 점점 더 고단해지고 쓸쓸해진다. 늙은 말이 무거운 짐을 싣고 네 발로 서지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엉기는 것 같다. 겨우, 그러나 기어코 봄은 오는데, 그 봄에도 손잡이 떨어진 냄비 속에서 한 움큼의 냉이와 된장은 이 기적의 .. 더보기
타락한 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 /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타락한 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가능한 싸움이죠. 이길 수는 없어요.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워지고, 농담과 사소한 불법으로 무마해 가며 살거나, 혹은 할리우드 제작자처럼 타락하고 사교적이며 무례해질 수 있겠지요.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전문직 두세 종을 제외하면, 이 시대에 한 남자가 어느 정도 타락하지 않고, 성공이란 언제 어디서나 부정한 돈벌이이게 마련이라는 냉혹하고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에서 적절한 풍족함을 누릴 방법이 전혀 없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죠. / 아마도 지금쯤은 그녀도 알고 있겠죠. 내가 애썼다는 사실을, 그녀를 몇 번만 더 웃음 짓게 할 수 있다면, 내 하찮은 문학적 경력을 몇 년 희생하는 .. 더보기
네 전화를 받아주고 싶었어, 주말에 본 영화가 잊혀지지 않아 괴롭다. 오늘 오후엔 버스 안에서 덜컹덜컹 흔들리다 말고 장면 하나가 울컥 떠올라 잠시 심호흡했다. 대화 속에 농담처럼 던져진 소재가 과거 장면과 겹치며 사건 전체를 의미화/구체화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디테일 중 몇 개가 비수처럼 꽂히더니 좀체 뽑히지 않는다. 각오는 하고 보았으나 가뜩이나 우울한 이즈음 볼 영화는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그러나 좋은 영화였던 건 확실하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진실로 절망한 자는 언제나 홀로 있다. 그는 연대할 수 없고, 내러티브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서사를 언어로 구현할 수 없으며, 오직 내지르는 절규와 표정만으로 그 절망의 흔적을 말한다. 주인공은 그런 종류의 절망, 사회가 한 번 더 입을 막아 더더욱 언어화될 수 없는 이중구속의 지.. 더보기
위화, [제7일] 자각할만큼 꽤 긴 시간 소설과 떨어져 지냈다.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애를 썼는데도 소설이 내게 오지 않았다는 게 옳은 표현일게다. 한두 챕터 속도를 내며 읽다가도 어느 지점에 이르면 괜히 낯간지럽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금세 책을 덮어야했다. 소설을 읽지 않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 자각은 생경했고 쓸쓸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소설 대신 인문서를 훌훌 읽어내며 종종 그런 생각도 했다. 혹 나는 이 모든 거짓말의 세계를 믿기엔 너무 냉소적인 인간이 된 것이 아닐까하고. 말랑하고 촉촉해 어떤 텍스트든 예민한 곤충처럼 민감하게 받아들이던 스스로의 스무 살이 몹시도 멀게 느껴졌다. [제7일]은 그 쓸쓸함을 깨뜨리며 내게 왔다. 친구 하나가 격찬하기에 그렇다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며 읽기 시.. 더보기
롤랜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불편하게 설계된 우주 속에서 잠시 위로 솟아난 현상이자 일시적인 부조화일 뿐이란다. 열의 죽음은 우주의 종말이자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인데, 삶은 그 기초가 되는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야.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 헛되다고 해서 가치가 덜한 것은 물론 아니란다." - 마크 롤랜즈, 철학자가 달린다 中 - 비교적 어린 시절 몹시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탓에, 사춘기 무렵부터 삶은 결국 무無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꽤 사실적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당장 어제 안았던 육신이 오늘 흔적없이 스러질 수 있다는 것, 모든 사건과 사고, 죽음과 소멸은 나나 내 사유의 납득 범위와 아무 관계 없이 시작되고 완결되며 내겐 그 흐름을 막을 하등의 권리가 없다는 것을. 다행한 일은 '죽음은 숙명이고 모든 소중한 것은 사라진.. 더보기
철학자가 달린다 일과 놀이에 대해, 개별 포인트 외에는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선수는 그 포인트를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집중력을 잃는 순간, 개별 포인트는 도구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전락한다. 그 포인트의 가치는 더 넓은 범위의 경기에서 포인트가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에 제한된다. 포인트가 중요한 이유는 그 상징 때문이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일단 이렇게 되어 버리면, 경기는 실패다. 초킹이 온다. 각 포인트와 딜리버리마다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면 그게 바로 놀이이다. 그러나 각 포인트나 딜리버리의 가치가 도구적인 것이 되면 그 때는 일이 된다. 일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놀이일 수 있다. 일과 놀이의 구분은 활동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에 달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