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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다, 쓰다

위화, [제7일]



자각할만큼 꽤 긴 시간 소설과 떨어져 지냈다.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애를 썼는데도 소설이 내게 오지 않았다는 게 옳은 표현일게다. 한두 챕터 속도를 내며 읽다가도 어느 지점에 이르면 괜히 낯간지럽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금세 책을 덮어야했다. 


소설을 읽지 않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 자각은 생경했고 쓸쓸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소설 대신 인문서를 훌훌 읽어내며 종종 그런 생각도 했다. 혹 나는 이 모든 거짓말의 세계를 믿기엔 너무 냉소적인 인간이 된 것이 아닐까하고. 말랑하고 촉촉해 어떤 텍스트든 예민한 곤충처럼 민감하게 받아들이던 스스로의 스무 살이 몹시도 멀게 느껴졌다.


[제7일]은 그 쓸쓸함을 깨뜨리며 내게 왔다. 친구 하나가 격찬하기에 그렇다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무심한 내 마음에 부드러운 불씨 하나를 댕겨준 고마운 텍스트였다. 중간에 덮기는 커녕 한 챕터 두 챕터 갈수록 더 몰입해 읽었다. 차가워진 내면 깊은 곳의 물이 덥혀진 느낌. 이 따뜻함은 여름처럼 뜨거운 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만가만, 안으로부터 조그마한 장작을 덧대가며 조용히 타는 겨울철 모닥불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바깥에서는 갈수록 당당해지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점점 더 외롭고 쓸쓸해져, 그럴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 눈이 촉촉해진 그 순간 그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따뜻함을 느꼈고, 그 뒤 며칠 동안 내가 자신 옆에 있어줄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의 갑작스러운 귀양에도 무척 담담해 보였다. 내가 들어올 줄 몰랐기 때문에 집에 먹을 게 없다며 씻고 있으라 하고는 근처 식당에서 요리 네 가지를 사왔다. 아버지가 식당에 가는 일은 아주 드물었고, 한꺼번에 요리 네 가지를 사는 일은 더더욱 전례가 없었다. 식사할 때 아버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쉬지 않고 내 밥그릇에 음식을 놓아주었다. (중략) 나중에 하오 아저씨가, 그 날 저녁 내가 잠든 다음 아버지가 찾아왔었다고,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과 아줌마에게 "양페이가 돌아왔어, 내 아들이 돌아왔어" 라고 말했다고 알려주었다.


"넥타이 하나가 280위안이야."

"아빠, 잘못 보셨어요. 2천 8백 위안이에요."

아버지의 낯빛이 놀라움에서 슬픔으로 바뀌었다. 본인의 주머니 사정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아연해졌다. 그때까지 가난하긴 하지만 절약한 덕분에 그런대로 넉넉해졌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그 순간 절감한 것이다.


내가 헤헤 웃자 아버지도 헤헤 웃었다. 그런 다음 조용히 말했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보는 거야."


이야기는 주인공 양페이가 죽은 후의 7일을 다루고 있다. 시신을 거둬줄 사람이 없어 스스로 상장을 단 가여운 양페이의 영혼은 생전 사랑했던 사람들을 죽음 너머 세계에서 다시 만난다. 오래 전 헤어졌지만 먼길을 거슬러 '나의 남편은 당신 뿐'이라고 말하고 작별의 인사를 전한 전前부인 리칭, 젖을 먹여 양페이를 키워주었고 지금은 27명의 아기들을 돌보게 된 양어머니 리웨전, 살아서는 인생의 전부를 걸고 아들을 지켰고 죽어서는 양페이의 이름만을 이정표 삼아 머나먼 곳으로부터 걷고 걷고 또 걸어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한 진실한 아버지 양진바오. 여기에 비정한 사회에 희생당한 순박한 이웃의 사연까지 다양한 결의 스토리가 빗방울 협주곡처럼 이어진다.

 

위화는 등장 인물의 연쇄적인 죽음으로 연결되는 플롯 전체를 통해 정부/사회에 대해 단호하리만치 냉담한 불신을 보이지만 (스토리라인의 특성상 모든 인물이 만나는 필연적인 계기는 죽음이며, 그 모든 죽음이 정부/사회로부터 조작되었거나 은폐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 반면 사회를 이루는 인간 개개인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표한다. 사회를 불신하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이 깊고도 뜨거운 애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뭇잎에 호수물을 떠 염하며 가여운 아가씨의 마지막 안식을 배웅하는 죽은 자들의 행렬이나 원수로 만났지만 이제는 모든 원한을 잊고 나란히 바둑을 두며 서로를 마주보는 두 영혼, 죽어서도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나르며 먹는 가게 풍경은 이미지화할수록 따스하고 애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담담하고 담백하기 그지 없는 위화의 문장 안에서 놀랍도록 아름답게 직조된다.

 

당신이 나와 같다면 이 이야기에서 빗소리를 들을 것이다. 무덤도 없이 영원을 떠돌 인간들을 천천히 매만지고 위무하면서도 결코 격정으로 치닫는 법 없는 잔잔한 빗소리를. 그리고 이 빗소리가 품은 강한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알 수 없는 안도감, 마은 한 켠에 자리잡은 외로움, 어찌할 바 없는 애틋함, 슬프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묘한 감정으로.

 

우연을 가장한 치밀한 플롯으로 이 이야기를 품어낸 작가에게 감사를 보낸다.

사람과 사랑, 인연과 추억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