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여름의 판타지아를 보았다. 영화관을 나서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환기한 내 추억에 대해.
서두에 숫자를 붙인데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긴 글이 될 것 같다.
2
오랜 지인들이라면 혹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2011년 여름, 나는 터키에 갔다. 한 강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얼굴을 하고 버스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내고 싶었던 시절이었고, 마음이 가난해 일기도 잘 쓰지 않던 시절이었으며, 여행지에서 신고 다닐 튼튼한 운동화 한 켤레를 사러나갈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빠 온 세상 모두를 진심으로 저주할 때였다. 그러나 골든혼과 마르마라 해를 보겠다는 일념에 새벽 잔업이 힘들지 않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인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그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시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끊은 항공기는 나를 새벽 다섯 시에 이스탄불에 떨궜고, 당연히도 그 시간의 호텔은 내게 체크인을 허용하지 않았다.
로비에 짐을 맡겨 둔 뒤 무작정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어디선가 아련하게 히맘 소리가 들렸고 일출로 어른거리는 아야 소피아도 아름다웠는데, 그 매혹적인 도시에서 내가 가장 먼저 겪은 일은 강도였다.
일을 당할 때의 기억 자체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No! Plz! 소리치자마자 꽃이 피듯 일제히 열어 젖혀지던 작은 골목의 창문들, 억센 힘으로 밀쳐져 골목길에 넘어진 나를 가엾게도- 하며 안아주던 아주머니의 온기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나를 위해 창문을 열었던 사람들 중 하나가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떨고 있던 나를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그 안에 돈은 없었어요, 전부 캐리어에 넣어두었거든요. 하지만 패스포트가 가방 안에 있고, 또 그 가방은 저한테 의미가 있는 물건이어서... 듣고 있던, 다정한 얼굴의 경찰은 영어를 잘하는 애를 부를게요- 라고 말하곤 곧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에 흰 티, 검은색 반바지를 입은 남자를 데려왔다.
이제 괜찮아. 누만이야, 웃는 얼굴로 남자가 말했다.
나는 내밀어진 손을 쥐며 사라야, 답했다.
패스포트는 찾을 수 없겠지만 소매치기라면 가방은 대충 아무데나 버렸을거야, 소중한 물건이니 찾아보자- 누만의 말에 우리는 작열하는 이스탄불 햇빛 아래 구시가지를 두 시간쯤 쏘다녔고, 땀을 뻘뻘 흘리는 그를 보다못해 나는 콜라라도 살게,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노, 모든 이스탄불 시민의 사과를 대신해 내가 살거야. 점심도 쏠게- 라고 답했다.
3
이스탄불엔 나흘을 머물렀고 나는 그 기간 느지막한 오후 시간의 대부분을 누만과 함께 보냈다.
내 영어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유창하지 않아 우리는 띄엄띄엄 힘든 대화를 했다. 그는 말했고 나는 주로 들었다. 다만 누만은 끈기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괜찮아, 노력해봐, 고통스러운 영어로 끊어지는 내 말을 오래도록 기다려주었다.
우리는 마르마라 해가 발 아래 펼쳐지는 그의 단골 카페와 돌마바흐체의 아름다운 정원, 거대한 술창고였던 예바라탄을 보았고, 여행객이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 (내가 소개치기를 당한) 구 시가지를 오래도록 걸었으며, 고등어 케밥과 차이, 아이스라테를 함께 먹기도 했다.
- 너 그거 알아? 한국은 바캉스 기간이 엄청 짧아.
- 알아. 휴가가 짧을 뿐더러 일도 엄청 많다고 들었어.
- 응. 난 이번 휴가를 오려고 거의 2주 간 매일 같이 야근했어. 평범한 직장인의 가장 긴 연휴는 5일쯤 되지 않을까 싶네.
- 진짜 끔찍하다. 그럼 휴가는?
- 그게 휴가라니까.
- 아니 진짜 휴가. 예를 들어 네가 이스탄불에 3주쯤 있는 게 가능할만큼 긴 휴가. 네가 본 이스탄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내가 아는 근사한 곳은 아직 소개도 못한걸.
누만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대학에서 만난 여자와 스물 셋에 결혼해 스물 일곱에 이혼했다. 왼쪽 팔엔 아들의 이름을 새긴 문신이 있었고 잠들기 전이면 늘 이혼한 아내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했다.
언젠가는 크루즈를 짓고 싶다는 그는 필리핀에 큰 수해가 났을 때 자원해 그곳에 갔다. 수해민을 도와 가건물을 만들고, 밥을 지은 뒤 일몰을 보며 수영을 했다고. 아름다운 여자들과 즐기고, 다음 날 느지막히 일어나 건물 짓는 일을 돕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다시 수영했다.
천국같았어, 누만이 말했다. 그렇게 일 년 반을 지낸 후 유럽을 떠돌았다. 여행을 할 때면 늘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패스포트와 체크카드, 옷 한 벌을 든 채 비행기에 올랐다 했다. 사라, 다음에 또 여행을 한다면 예맨으로 가.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나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어. 꼭 가봐.
하지만 그가 말한 예맨은 곧 내전에 휘말렸으므로 나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4
어느 밤, 나는 누만이 직원으로 있던 오텔에 놀러 가 그가 소개해준 러시아 커플을 만났다. 레슬링을 보러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터키까지 온 러시아 커플 두 쌍이었다.
그들은 누만이 권하는 라키를 비웃곤 탁자 아래서 보드카를 꺼냈다. 라키는 술이 아니야! 그들의 영어는 서툴었고 나는 그들과 지피기지하였으므로 우리는 더욱 화기애애했다.
더 늦기 전에 러시아에 놀러와. 인생은 짧다고! 그들이 말했고, 춤추자! 오텔의 거대한 프로젝터를 통해 상영된 레이디 가가의 MV를 보다말고 내가 외쳤다. 우리는 밤새 레이디 가가와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오텔의 개와 놀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아무 근심 없이 웃고 떠들었던 새벽.
영 레이디, 터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그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고 빅토르 최의 음악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여름' 을 함께 들었다.
5
여행지의 24시간은 평소의 240시간이 농축된 것 같이 깊고 진해서, 정착민은 저도 모르게 그 에너지에 빨려든다. 누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는 내 다음 여행지였던 카파도키아에 함께 가고 싶다했고, 사실 거기에서 벌룬을 타는 값이면 스페인에도 갈 수 있지만 거기엔 네가 없으므로 두 번을 다녀온 카파도키아에서 다시 벌룬을 타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겐 남자친구가 있고 나흘 후면 보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라고 답했다.
너는 아름다워. 널 계속 보고 싶고, 보고 싶어할거야- 헤어질 때 나를 안아주며 누만이 말했다.
6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그런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 문득 이 이야기를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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