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것이 아니라 생각되는 일엔 초연하려 노력한다. 억지로 우겨 잠시간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있겠으나 맞춤옷이 아닌 일은 떠나기 마련이고, 그 상실은 아예 가지지 못했을 때보다 더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끔은 내 그릇을 넘어설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몹시 갖고 싶은 것이 생긴다. 그럴 땐 좀 괴롭지만, 혹시나 있을 가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다만 원칙은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어찌됐든 나는 그렇게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생길 때의 스스로를 좋아한다. 집중하고 열광할 때의 나. 열 두살 이래 나는 항상 소유할 수 없는 판타지 속의 무언가를 좋아했는데, 그 한편 내 애정의 대상이 오직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좋아함은 무아의 열광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위무하고 북돋우는 재례 행위같은게 아니었나, 생각할 때가 있다.
2
몇 년 간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가 위태롭다 느꼈던 때는 새벽 1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몇 개월간 지속되던 때도, 이 일 저 일 정신없이 불려다니며 업무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치일 때도 아니었다. 그 때는 즐거웠다. 난 정신없이 일하는 걸 좋아하는군,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주장해 설득시키는 것도 좋아하는군, 오히려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했을 정도다. 스스로가 위태로웠을 때는 오히려, 욕망이 점차 옅어지고 거세되며 향상심이 없어지는 나를 발견했을 때다.
노동자로서 먹고 사는 것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고, 밥벌이를 추구하는 것 역시 물려받을 자산이 딱히 없는 입장에선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그러므로 피사용자로서, 일에 자아를 투여하지 않는 것이 노동자로서의 현명한 태도임에 분명하다.
오랫동안 상사로서, 또 친애하는 동료로서 옆에 있어줬던 한 선배는 '나는 지희를 좋아하고 지희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너를 위해서 충고하자면 이 일을 조금 덜 좋아하는 게 좋겠어. 밥벌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거리를 둬야 상처도 덜 입고, 더 잘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었다. 난 그것이 선배로서 내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충고였음을 그때도 알고 있었고 지금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다. 어리석게도 나는 일에 많은 자아를 투여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타입의 인간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3
최근의 나는 어떤 과제에 도전하고 있는 중인데, 어찌됐든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을 제1과제로 삼고 노력하고 있다. 잘될지 잘 되지 않을지는 스스로도 모르고 중간 지점까지 온 지금까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됐든 진실하게 임하고 있다. 지금의 내겐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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